조용했던 천년고도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석굴암, 첨성대, 대릉원 등 유적지로 기억되던 경주는 재미있는 공간과 사람이 넘치는 곳으로 바뀌었다. 이제 경주에서는 왕릉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재미있는 가게와 간판은 조용했던 천년고도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고 있다.
한국옥외광고센터 공동기획 아름다운 간판거리를 만듭시다 - 경북 경주시 포석로
▲ 경주에서 카페를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한 카페 ‘에코토’. 채널사인으로 각각 영문과 한글 자음으로 표현해 둔 것이 인상적이다. 흰색 벽에 검은색으로 배치해 가독성을 높였다.
경주의 스타일로 만들어진 핫 플레이스
황리단길이라는 명칭을 처음 들었을 땐 경리단길의 아류작 정도로 생각했다. 지방에서 어설프게 벤치마킹해서 핫 플레이스가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초기엔 그런 느낌이 조금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 둘러본 황리단길은 완전히 경주의 스타일로 해석해 담은 공간이 돼 있었다. 여전히 황리단길보다 포석로가 더 예쁜 이름 같지만... 왕릉을 보며 고즈넉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핫 플레이스는 아마도 경주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경주는 조용하고 좋은 도시였지만, 발전이 더딘 늙은 도시였다. 대학생 때 4년 동안 경주살이를 하며 느낀 공간에 대한 인상은 그렇다. 그래서 그 당시엔 나중에 노년에 다시 돌아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한 도시였다. 경주는 곳곳에 솟은 왕릉과 그로 인해 형성된 녹지로 인해 꽤 멋있는 도시다. 하지만 젊은 층이 살기엔 조금 지루한 도시다. 포석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황리단길은 이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재밌는 도시가 됐음을 알리는 계기였다.
몇 년 전부터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 가게는 꽤 큰 블록을 이루고 젊은 여행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천마총으로 시작해서 첨성대를 끼고 대릉원을 한 번 돌고 다음 코스를 향해 분주하게 빠져나가는 길이 아니라 포석로는 이제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흥미로운 공간이 됐다. 커피를 한 잔 들고 첨성대를 구경하거나, 루프톱 바에 앉아 왕릉을 바라보는 건 경주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황리단길이 아류작이 아닌 이유는 유적지로 상징되는 경주의 시그니처 위에 쌓아 올린 핫 플레이스이기 때문이다. 유적지와 핫 플레이스는 이질적인 단어 같지만, 경주에서는 묘하게 잘 어울리며 매력을 뿜어낸다. 마치 일본의 경주라 불리는 교토에 흥미로운 카페가 많은 것처럼.
▲ ‘카페 르초이’는 윈도그래픽과 입간판 뿐이지만, 익스테리어 자체가 인상적이라 시선을 사로잡는다. 흰색 타일로 마무리한 벽에 목재로 익스테리어를 구성한 것이 꽤 매력적이다.
천년고도를 흥미롭게 만드는 가게와 간판
포석로에서 눈에 띄는 간판은 하나같이 다 이색적이고 가게의 개성을 담는다. 지자체에서 진행한 간판 개선사업처럼 특정 구획에 질서정연하게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골목 구석구석 흩어져 있지만,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는다. 천마총과 대릉원을 중심으로 넓게 퍼져있어서 걷는 재미가 있다. 예전 포석로가 천마총과 대릉원을 가기 위한 길이였다면 지금은 좀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됐다. 흥미로운 가게와 간판이 유적지와 시너지 효과를 내며 공간을 흥미롭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포석로의 가게와 간판은 천년고도 경주의 분위기를 바꾸는 새로운 관광 자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리에 흥미로운 가게가 늘어나면 예쁜 간판도 같이 증가한다. 즉, 걷고 싶은 거리는 예쁜 간판이 많이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도 있다. 포석로에는 확실히 예쁜 간판이 많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연스레 카메라를 꺼내 든다.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은 풍경. 흥미로운 가게와 예쁜 간판이 길거리에 불어넣는 힘은 위대하다.
포석로의 가게와 간판은 조용했던 도시를 깨우는 역할을 하며 사람을 모은다. 흥미로운 가게와 간판이 모여 상권을 살린 사례다. 유적지라는 정통적인 관광자원에 새로운 재미를 더해 경주에서 즐길 거리가 증가한 셈이다. 흥미로운 가게와 간판으로 천년고도 경주는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가 됐다. 경주의 핫 플레이스 포석로는 간판이 공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다.
▲ 포석로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인은 마카롱 전문점 ‘열매달 열여드레’였다. 노란색 벽에 붉은색 쉼표와 한옥 방문을 비스듬히 세워 적은 세 글자 마카롱. 벽면 컬러와 마카롱, 한옥 방문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경주의 매력을 상징하는 듯했다. 물론, 가게의 이름을 표시한 사인은 출입구 앞에 입간판으로 배치했지만.
본 연재기사는 행정안전부, 한국지방재정공제회와 월간《사인문화》가 간판문화 선진화와 발전을 위해 진행하는 공익성 캠페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