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의 푸른 바다를 따라 걷다 보면, 한적한 언덕 위로 오래된 시간의 향기가 피어오르는 마을을 만나게 된다. 바로 동해시 묵호동의 논골담길이다. 묵호항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 모여든 일꾼들이 정착하며 형성된 곳. 이곳은 단순한 벽화마을이 아니다. 항구와 함께 숨 쉬며 살아온 사람들의 애환과 희망이 벽면마다 스며 있는 이야기의 공간이다. 항구의 시간과 역사를 벽화로 담아낸 논골담길.
▲ 논골담길 중간쯤 있는 포토존은 묵호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처럼 구성해 사람들이 한 번쯤 들르는 곳이다. 속이 뻥 뚫릴 정도로 탁 트인 바다가 아니라 삶의 향기가 더 짙을 것 같은 항구의 풍경이 보여서 논골담길의 스토리가 더 명확하게 느껴진다.
논골담길이란 이름 속에 담긴 마을의 역사 논골담길이란 이름은 두 가지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하나는 산 중턱에 자그마한 논이 있어 논골이라 불렸다는 설. 나머지 하나는 묵호항에서 생선을 지고 올라오던 사람들이 흘린 물로 골목이 질퍽해지자 논골이라 불렀다는 설이다. 오징어 명태가 넘쳐나던 그 시절엔 온 동네 흙길이 온통 물바다가 되어 장화 없이는 못 사는 동네라는 이야기가 있으니 아마도 골목이 질퍽해서 논골이 됐다는 설이 유력해 보인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마을 이름에는 바다와 땅을 오가며 살아온 이들의 노동과 땀이 담겨 있다. 여기에 이야기를 의미하는 ‘담(譚)’이라는 글자를 더했다. 논골담길은 곧 논골 마을의 이야기 길을 의미한다. 2010년 동해문화원의 주도로 마을 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이 이름은 공식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벽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기억과 애환, 마을의 역사와 시간을 담아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논골담길은 네 개의 길로 구성되어 있다. 묵호의 현재를 담은 논골1길, 모두의 묵호를 주제로 한 논골2길, 과거의 기억을 품은 논골3길, 미래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등대오름길까지. 각각의 골목에는 벽화가 있고 그 속에는 이 마을을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이 있다. 논골담길 곳곳에는 고양이를 볼 수 있다. 여느 항구마을이 그렇듯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물고기를 얻어먹어 보려는 고양이가 이곳에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벽화 속에 그려진 고양이는 물론 실제로 제집 드나들 듯 골목 곳곳을 누비는 고양이까지. 길고양이인지 산책을 나온 집고양이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논골담길의 벽화와 분위기를 완성하는 요소 같아서 흥미롭다. 마치 벽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만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같아서.
▲ 묵호등대를 중심으로 가파른 언덕에 형성된 논골담길은 묵호항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 모여든 일꾼들이 정착하며 형성된 곳이다. 이곳은 단순한 벽화마을이 아니다. 항구와 함께 숨 쉬며 살아온 사람들의 애환과 희망이 벽면마다 스며 있는 이야기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묵호항이 불러낸 마을의 흥망성쇠 1941년 개항한 묵호항은 동해안의 대표적인 항구로 빠르게 성장했다. 항구가 커지자 일자리를 찾아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은 항구 인근의 언덕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정착했다. 그렇게 형성된 마을이 바로 현재의 논골담길이다. 1970년대까지 호황을 누렸던 묵호항은 이후 규모가 감소하며 쇠락의 길을 걸었고, 동시에 논골담길에 살던 사람들도 빠져나가며 쓸쓸한 마을이 되었다. 어쩌면 논골담길에 그린 수많은 벽화는 마을의 흥망성쇠를 담은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좁은 골목길과 가파른 계단,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를 누비며 생계를 꾸려가던 사람들의 삶은 마을 곳곳의 벽화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하루 수차례 생선을 이고 진 주민들이 오르내렸던 그 길은 이제 여행자들의 발길로 채워지고 있다. 논골담길의 끝자락엔 묵호등대가 있다. 이 등대에 오르면 바다 건너로 일본이 바라보이고, 저 멀리 묵호항의 방파제가 길게 누워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그저 아름답기만 한 관광지가 아니다. 전쟁과 빈곤, 이주와 정착, 희망과 공동체의 이야기가 오롯이 서려 있는 삶의 터전이라 할 수 있다. 논골담길은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이 골목을 걷다 보면 이름 없는 사람들이 쌓아 올린 삶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며 하나의 스토리를 이룬다.
▲ 논골담길은 곧 논골 마을의 이야기길을 의미한다. 2010년 동해문화원의 주도로 마을 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이 이름은 공식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벽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기억과 애환, 마을의 역사와 시간을 담아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호황을 누렸던 그 시절의 묵호항을 담은 벽화를 통해서 공간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