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환경 가꾸듯 문자환경도 아름답고 깨끗하게 방송인 정재환 씨 이미 10년 전에 드라마에도 출연해 활동 영역을 파괴한 개그맨 정재환 씨는 지금은 방송진행자로서,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또 한글문화연대 부대표로서 바쁘게 지내고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어 바쁘지만 우리말글을 지키는 데는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다. 최근 그는 간판, 광고판, 안내문 등에서 상스럽고 잘못 쓰이는 표현들을 바로잡은『대한민국은 받아쓰기 중』이라는 책을 냈다. 우리말글 지킴이 정재환 씨가 생각하는 좋은 간판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나라 간판 너무합니다! 개그맨, 탤런트, 방송진행자, 대학원생, 그리고 또 하나 한글문화연대 부대표…. 정재환 씨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방송과 학업 등으로 바쁜 그는 기자의 집요한(?) 연락에 귀찮을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기색 없이 친절하게 응해줬다. 방송이 끝난 후 만난 그는 먼저 본지에 실린 외국어 표기 간판 사진들을 가리키며 “여기 이야기 할 거리가 많네요. 허허”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정재환 씨는 최근 『대한민국은 받아쓰기 중』을 내 각종 광고판, 간판, 교통안내표지판 등에서 상스러운 표현, 잘못 표기하고 있는 말글을 바로잡았다. 정재환 씨가 왜 이런 책을 냈을까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벌써 우리말 사랑에 관한 네 번째 책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우리말글 지킴이다. 방송진행자로 활동하면서 바르고 고운 우리말글을 솔선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말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정재환 씨는 “어느 날 거리를 걷다가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간판, 광고판 등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오염된 문자환경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거 문제가 심각한데…. 자연환경을 가꾸는 것처럼 문자환경도 아름답고 깨끗하게 가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해 이 책을 내게 됐다”고 말한다. 거리에는 국적 불명의 간판들, 우리나라에 맞춤법이 있기는 하냐는 듯 버젓이 잘못 표기하고 있는 간판들이 많다. 의식하고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고 마는,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책에 보면 정재환 씨가 직접 촬영한 ‘졸라빨라 PC방’, ‘오르가즘 쎄일’ 등 아연실색할만한 간판 사진들이 실려 있다. 이런 간판은 교육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좋지 않다. 아이들이 ‘오늘 졸라빨라 PC방에 가자’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는 우리 문자환경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면서 ‘졸라빨라 PC방’ 대신 ‘초고속 피시방’, ‘쏜살같은 피시방’, ‘눈깜짝할 새 피시방’, ‘번갯불에 콩 피시방’, ‘전광석화 피시방’, ‘이봉주 피시방’ 등 신선한 이름을 대안으로 제안한다.
바른 간판, 좋은 간판 만듭시다! 간판은 생활환경인 동시에 공공환경이다. 생활과 직결하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 바른 간판, 좋은 간판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간판은 우리문화를 나타내는 얼굴이다. 우리나라 간판들은 요상한 표현, 외국어, 외래어 남용, 습관처럼 잘못 사용하고 있는 말글들로 인해 병들어 있다. 아이들이 분명 학교에서는 ‘클리닉’, ‘슈퍼’가 맞는 표현이라고 배웠는데, 거리에서 ‘크리닉’, ‘수퍼’라고 표기한 간판을 보면 혼동되지 않을까? 기준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어서 “간판 제작업체들이 제작 단계에서 중구난방 사용하고 있는 표현들을 통일한다면 어지러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간판 제작업체는 자신들이 거리문화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생각하고 바른 간판, 좋은 간판 만들기에 좀더 신경 써 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그는 “사실 이 책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쾌적한 문자환경을 지켜나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우리말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재환 씨가 생각하는 좋은 간판은 무엇일까.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간판”이라며 의외로 간단명료하게 대답한다. “요즘 대기업들도 영어이름을 많이 채택하는데 이것이 과연 세계화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수록 우리말글을 써야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사람이 더 많이 이용하는 간판에 굳이 영어를 쓸 필요가 있나. 한국 사람이 기본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언어는 우리말글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국민은행을 다니던 동네 할머니가 KB를 국민은행인지 모르고 한글로 크게 표기한 다른 은행으로 옮겼다는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영어로 된 간판을 읽지 못해 불편을 겪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영어가 세련되고 표현력이 풍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서적 편견이다. 한글도 서체를 다양하게 개발한다면 충분히 멋스럽다”고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새롭게 계획하는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레드 데블스(Red devils)’라는 영어 표현으로 외국에 알려져 있는 우리나라 응원단 붉은악마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고 있단다. 어떤 선물일지 짐작이 간다. 정말, 정재환 씨. 놀랍습니다. 기대해보겠습니다.
박선화 기자 psh@sign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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