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 몸을 펴 기지개 짓으로 봄을 알리는 경칩(驚蟄)에 툭툭 흙을 두드려 들숨을 삼키는 새싹들을 보노라면 꽃샘추위로 늦장을 부려도 봄은 봄이다. 굳이 진달래로 뒷산 구석구석을 치장하지 않더라도 이미 대지는 들숨과 날숨으로 들썩들썩 분주하기만 하다. 곧이어 툭툭 새싹들이 솟아날 때면 여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하얀색으로 1차원 평지에 머물렀던 세상이 돋아나는 푸릇한 기운으로 점점 입체화하면 겨울 내내 잔잔히 흘러가던 생체시계마저 한껏 들떠 피곤을 느낄 정도로 폭주하고 만다. 가만히 생각하면 1차원에서 입체로 돋아나는 흐름은 어디든 비슷한 것 같다. 사인 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점포를 알리기 위해서 고작 널빤지에 화공으로 큼지막하게 써내려간 몇 글자가 시작인데 점점 선명하고 실물 같은 그림을 찾아 남들보다 더욱 튀는데 열을 올리더니, 이제는 여기저기 삐죽삐죽 2차원 평면을 뚫고 나와 버젓이 허공에 걸려있다. 하얗게 질린 경기불황의 늪에서 푸릇한 희망의 기운이 비치는 것일까. 점포주 사이에서 채널사인을 중심으로 입체사인 트렌드가 가속화하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인들이 곳곳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대규모 광고물 정비사업부터 대기업까지 하나 둘씩 입체사인을 채택하면서 시작한 봄의 기운은 이제 2007년 사인 업계를 움틔우는 단비로 꽃을 피우는 것이다. 기존 알루미늄 프레임에 플렉스를 씌우는 것 외에도 갤브 스틸이나 스테인리스 스틸을 절곡한 입체형 프레임과 LED 등 고급광원을 사용한 개방형, 후광형, 캡형 사인 등은 새로운 수요를 암시하고 있다. 또 문자 위주로 제작됐던 틀에서 벗어나 소재의 특성을 살린 디자인은 지주, 돌출, 전면에 국한하지 않고 새롭게 구현되고 있다. 꽃샘추위로 몸을 떨어도 봄은 도래했다. 평면을 뛰어넘은 길거리의 채널사인이 바로 그 증거인 셈이다.싹이 솟으면 무성한 여름을 준비해야 한다. 3차원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다양하게 등장하는 채널사인을 통해 움트는 계절, 시원함이 묻어오는 봄바람의 향기에 한껏 취해보자.
글 김주희 / 사진 김수영
경쾌한 노란 필기체 활자가 캐노피 위에 걸터앉았다. 캐노피 위에 설치한 채널사인은 원거리 가시성이 높아 시야를 확보하는 데 주효하다. 특히 입구가 좁은 소규모 점포에서는 더욱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내부 광원으로는 아마 네온을 사용했을 것이다.
속옷가게의 전면에 설치한 대형 채널 사인이다. 점포명인 'Yes'의 ‘Y'와 ‘Y' 염색체를 교묘히 활용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유리전면의 'es'와 합류하기 위한 또 다른 'Y'의 행보도 눈여겨 볼만 하다.
갤브 철판의 변신은 무죄라고 아직 안했던가? 그렇다면 지금 말한다. 어느새 입구를 치장하는 사과로 변신해 돌출 잎사귀를 달아 점포를 알리는 구실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하지만 이벤트 성격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방에 있어야 할 곰 인형까지 나와 호객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케이크 전문점의 정체성은 어디로 가서 찾아야 할까?
굳이 색상으로 강조하지 않아도 미국은 역동적인 나라다. 원색은 흥미를 유발하지만 과하면 부담스러움을 떨치기 힘들다. 그런데 돌출은 평범한 하얀색이다. 분별력이 최대로 허용하는 범위에서 이어놓은 채널사인도 멀리서 보면 뭉뚱그려져 1939라는 숫자만 도드라질 것이다. 실내 인테리어와 돌출, 전면 갑자기 ‘따로 국밥’이 먹고 싶다.
목청껏 외쳐대는 소리가 보이는 듯 하다. “라이브 콘서트 전문 질러존입니다. 보고가세요” 조각기로 목젖 형태를 제작하고 독특한 채널구조로 소리의 파장을 표현했다. 시트로 틈틈이 알차게 적어놓은 메시지도 분명하고 발상이 돋보이는 사인.
무뚝뚝한 벽도 가리고 점포도 알릴 수 있는 전면사인이 정겹다. 오솔길처럼 꾸며진 화단을 지나면 햇병아리 같은 노란 간판이 화사하게 손님을 맞는다. 과하지 않은 섬세한 폰트를 사용한 채널사인이 조화롭다.
심플한 지주 구조지만 기둥을 두개로 나눠 안정감을 높였다. 아기자기한 화단과 조화를 이루는 익살스런 폰트도 좋다. 하지만 머지않아 점포주는 둘 중 택일을 해야 할 것이다. 갓 묘목을 벗어난 나무가 무성히 자라면 점포명을 가릴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올리브가 가져오는 웰빙 느낌을 살려 녹색으로 시트지로 조화를 이뤘다. 대형 ‘O'자를 지나는 풀잎도 싱그럽다. 하지만 채널의 크기와 아래 구조물에 비해 가느다란 폰트는 왠지 위태로워 보인다.
무거운 영웅적 느낌을 표현하기 위한 그을린 듯한 색감의 표현이 인상 깊다. 무게감을 유지하기 위해 내부에 직접 조명을 설치하는 대신 간접조명을 사용했다. 반듯하고 둥글기만 했던 폰트 사이에서 왠지 비장함마저 풍기는 사인이다.
전시회 부스에서도 업체를 알리기 위해 채널사인을 다양한 형태로 활용하고 있다. 터널 형태로 제작한 부스의 측면을 활용해 시원스럽게 표현했다.
우동 전문점인 소야미는 냄비 형태와 젓가락을 형상화한 채널을 사용해 점포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구현하고 있다. 쌀쌀한 봄비에 몸을 떨던 손님들은 이 사인을 보고 분명 뜨끈한 우동 국물을 떠올릴 것이다.
따뜻한 색감이 전해지는 벽돌 파사드를 바탕으로 채널사인을 설치했다. 하지만 너무 꽉 들어찬 느낌 때문일까 답답한 느낌이 든다. 일반적으로 앵커볼트를 사용해 고정하는 채널사인의 특성상 벽에 남는 흔적은 후에 사인을 교체할 때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차라리 트러스 구조물을 활용해서 벽면과 조금 거리를 두는 편이 나을 뻔했다. 채널은 시원스러운 성격만큼 여백을 잘 활용할 줄 아는 감각이 필요하다.
성형과 채널의 깔끔한 하모니다. 둘 다 앞으로 향하는 전진형 사인이지만 차분한 폰트와 배치로 인해 깔끔하고 모던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점포주 생각
천방지축 봉선화 연정 파라곤 네일(PARAGON NAIL)
봉숭아꽃 물을 곱게 들인 짙붉은 손끝을 바라보며 방울방울 첫사랑을 떠올리고는 이내 설레는 마음에 손가락만 마디마디 늘어놓았다. 첫눈이 올 때까지 남고픈 봉선화 연정처럼 붉게 도장한 외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트로 장식한 강화유리는 소녀의 가슴에 멍울지듯 하얗게 번져가는 눈송이 같다. 긴긴 겨울이 지나고 해가 바뀐 그해 4월, 치장하지 않은 속내를 드러낸 스테인리스 스틸이 새로 자라난 손톱처럼 멀쑥하게 고개를 내밀자 이내 또 다시 설레는 천방지축 소녀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조경진(27) / 파라곤 네일 대표
도트무늬와 귀여운 채널사인으로 여성들의 쉼터 연출 우리나라에 매니큐어가 전해진 것은 20세기 초에 불과하지만 예부터 우리나라 여인네들은 봉숭아꽃으로 소박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곤 했다. 사실 봉숭아꽃 물들이기는 단순히 꾸미는 것 외에도 붉은 색으로 악귀를 물리친다는 민간신앙을 포함하고 있었다. 지금도 작은 화단에서 봉숭아꽃을 키우는 사람들은 꽃잎이 무성할 때면 종종 물을 들이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첫눈을 기다리며 첫사랑을 떠올리는 간절한 마음은 있을지언정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최근 들어 전신미용인 에스테틱이 성행하면서 소박한 미적 욕구였던 손톱이 화려하게 다시 태어나고 있다. 입술 컬러와 네일 컬러를 매치 시키면서 정착하기 시작한 네일 아트가 이제는 토털패션의 개념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199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네일 아트가 점점 대중화하면서 이제는 백화점은 물론이거니와 거리에서도 심심치 않게 네일숍를 발견할 수 있다. 파라곤 네일 역시 작년 6월 압구정 로데오 거리 한 켠에 자리를 잡은 네일숍이다. 조경진 대표는 “3~4년 전부터 네일 아티스트로 활동하다 작년에 본격적으로 점포를 오픈했다.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아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니지만 가을과 겨울이 네일 아트의 비수기인 점을 감안한다면 매출은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며 안정되고 있다. 곧 다가올 성수기인 여름부터 더욱 번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한다. 네일숍은 보통 페디큐어(Pedicure)도 같이 병행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샌들을 신으며 여성들이 맨발을 노출하는 여름이 네일 아트와 함께 성수기라는 것이다. 감각적이고 미적 욕구가 강한 젊은 여성을 주 타깃층으로 하는 만큼 점포의 외관과 실내는 톡톡 튀는 개성이 묻어난다. 실제 조경진 대표도 이십대 후반 젊은 사장으로 처음 개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취향을 많이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조경진 대표는 “원래 도트무늬를 굉장히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외관에 있는 장식과 내부 모두 개인적인 취향을 반영해 도트무늬를 활용, 통일감있게 연출했다. 대부분 구조를 비롯한 장식은 인테리어 업체와 계약하기 전 직접 구상해 놓은 것으로 사인을 빼고 나머지 80%를 제안했다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직접 제작한 P.O.P.를 비롯해 따로 분리해 놓은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을 구분하는 칸막이 등도 직접 시트와 색상지를 활용해 만든 것으로 네일 아티스트로서의 감각이 점포 곳곳에 베어있다. 시공업체였던 준인테리어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업체로 기존 네일숍과 관련한 일을 많이 했던 업체였기 때문에 이해가 쉬워 더욱 공간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말도 전한다. 스테인리스 스틸을 돌출시켜 채널사인을 설치한 것은 준인테리어 대표의 제안으로 칸칸이 구분한 네모상자는 손톱을 연상케 한다. 비록 상호 때문에 열 한 칸이 됐지만 독특한 폰트가 귀여운 채널사인은 갤브 철판을 절곡한 후 LED를 내부 광원으로 활용, 아크릴로 마감을 했다고 한다. 시공기간은 점포를 오픈하기 전 약 한 달이 걸렸으며 비용은 인테리어와 사인을 모두 합쳐 약 3,000만원 정도를 소요했다. 조경진 대표는 “점포를 찾는 고객은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도 ‘예쁘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사인도 살짝 앞으로 돌출돼 눈에도 잘 띄고 전체적인 이미지와도 어울려 만족하고 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더욱 열심히 해서 이 지역의 대표적인 네일숍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라며 당당한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