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이 이름 알리는 가게가 있다. 방문객들은 주택가 한가운데서 한 시간씩 줄을 서도 기쁜 얼굴을 하고, 식사를 마친 손님들은 건물 깊숙한 곳으로 사라진다. 천장에 동글동글 매달린 노란 덩어리들은 우리가 알았던 무언가를 닮은 것 같은데, 그 정체가 기억 날쯤엔 익숙한 향기가 관심을 빼앗아간다. 붉은 벽돌집의 구경거리를 모두 보고 나오는 길, 문손잡이를 짚고 보니 그제야 이곳이 누구의 가게인지 깨달은 손님들이 하나 같이 내뱉는다. ‘아, 오뚜기?’. 브랜드를 지운 브랜드숍, ‘롤리폴리 꼬또’의 이야기다.
글·사진 황예하 기자
이름은 숨기고 인상은 각별하게
▲ 오뚜기 브랜드숍 ‘롤리폴리 꼬또’의 옥상정원 전경. 브랜드 굿즈를 판매하는 ‘큐브’ 위에 옛 오뚜기 공장의 유산인 V-믹서가 올려져 있다.
10만 장의 벽돌을 쌓아 만들었다는 오뚜기의 붉은 벽돌집은 감수성 넘치는 건축가의 사무소 같기도, 공들여 마련한 주택이라는 꿈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오뚜기 창업주 함태호 회장의 주택이 있었던 자리를 중심으로 유휴 공간을 포함해 총 1,650㎡ 규모로 재탄생한 ‘롤리폴리 꼬또’는 단순한 브랜드숍이 아니다. 오뚜기의 브랜드숍이자 안테나숍 역할도 겸하는 이곳은 익히 알려진 오뚜기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단지 오뚜기를 연상케 하는 은유로 공간을 채웠을 뿐.
역사가 긴 기업인 만큼 MZ세대에게는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이미지로 정체되어 있을 ‘오뚜기’라는 브랜드를 노골적이지 않되 효과적으로 각인하기 위한 전략은 이름에서부터 출발한다. 오뚝이를 뜻하는 영단어 ‘Roly-poly’와 벽돌로 지어진 것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Cotto’의 합성어 ‘롤리폴리 꼬또’라는 이름. 메뉴판에 적힌 가격도 오뚝이를 닮은 숫자 ‘8’로 끝이 난다. 5,800원, 12,800원, 17,800원…
▲ 오뚜기의 상징적인 색깔로 만들어진 오뚝이와 오뚜기의 굿즈들. 동글동글 오뚝이들 사이 ‘롤리폴리 꼬또’라는 공간을 완성한 벽돌 모양 키링이 눈에 띈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 장식도 여간 수상한 게 아니다. 카레에 담갔다 뺀 감자 같은 장난스러운 조형물들이 카운터와 계단 위로 가득 늘어져 있다. 반투명한 노란색 문 위에서 손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오뚝이는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꾸며진 공간에 입장할 때부터 식사를 마칠 때까지, 방문객들은 오뚜기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무의식적으로 브랜드의 새 이미지를 흡수하게 된다.
옥상을 단장해 만든 정원에는 오뚜기 굿즈 상품을 만나볼 수 있는 큐브와 오뚝이를 은유하는 팽이 모양 의자가 놓인 가든, 강렬한 컬러 오브제가 놓인 슬로프 등이 있다. 가구와 오브제의 동작, 형태가 모두 오뚜기가 추구하는 가치를 내포하고 있어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브랜드에 대한 경계를 낮추고 이미지를 환기하는 공간이다.
O2O 격전, 체험의 힘 오프라인 체험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환기하고 MZ세대에게 새롭게 각인되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은 오뚜기뿐만이 아니다. 온라인에서 아무리 세련된 브랜딩,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더라도 오프라인에서 같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면 젊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온라인이 소비의 주 무대인 세대인 만큼 온라인 호응도 중요하지만, 훌륭하게 브랜딩한 공간을 오프라인에서 체험한 소비자들은 온라인으로 그 경험을 연장한다.
▲ 계단 형태로 벽돌을 쌓아 올려 방문객들이 어디든지 편하게 앉아볼 수 있도록 한 ‘슬로프’. 계단에 놓인 이헌정 작가의 형광색 오브제들이 공간에 재미를 더한다.
오뚜기의 ‘롤리폴리 꼬또’처럼 안테나숍을 겸하는 체험형 매장 중 또 하나의 대표적 사례는 화장품 브랜드 미샤가 운영하는 ‘웅녀의 신전’이다. 미샤는 2017년까지만 해도 하루 1000만 원대 매출을 내던 인사동점 매장 폐점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미샤라는 브랜드의 흔적은 모두 지우고, ‘웅녀의 신전’에서 홍보하고자 했던 라인의 제품도 일절 배치하지 않았다. 오로지 콘셉트에만 집중한 카페로 탈바꿈하자 오히려 방문객들이 먼저 ‘미샤의 공간’임을 언급해 입소문이 났다.
온라인 쇼핑몰로 시작해 패션 브랜드로서 확장해 나가고 있는 무신사도 오프라인으로 넘어와 고객들을 만나고 있다. 홍대입구역 인근에 자리한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은 온라인 의류 쇼핑의 단점을 보완하고 브랜드 이미지 고급화를 위한 오프라인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다. 이외에도 동서식품 산하 커피믹스 브랜드 맥심의 ‘맥심플랜트’, 명품 의류 브랜드 구찌의 플래그십 스토어 등이 잠재 고객을 유인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오프라인 매장으로써 활약하고 있다.
장바구니
주문내역
업체 검색
업체 등록
사업 제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