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버내큘러(Vernacular) 스타일의 유럽 사인 디자인에 대해 알아본다. 체코,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노르웨이 등 유럽의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버내큘러 스타일의 사인 디자인이 어떤 형태로 공간에 적용되는지 살펴본다. (장효민 국립한국교통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필자의 원고는 월간 《사인문화》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 베르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컬러풀한 오래된 목조건축물과 노천카페의 모습.
노르웨이의 아이덴티티와 매력을 담고 있는 베르겐 빙하와 피오르(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와서 생긴 좁고 긴 만이라는 뜻의 노르웨이어), 대자연이 만들어 낸 파노라마 전경이 신비로운 나라가 바로 노르웨이다. 16만 개 이상의 호수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이 산악 국가는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연방 등과 접하고 있다. 예술, 공예, 산업 디자인이 나란히 꽃피고 있으며 가구, 에나멜 그릇, 섬유, 식탁, 보석, 디자인 분야는 인접한 북유럽 국가들과 유사하게 역사·민족적으로 독자적인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는 듯하다. 노르웨이의 수도이며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오슬로는 세계인이 여행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 중 한 곳이며 특히, 제2의 도시인 베르겐은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형형색색의 목조건물과 골목마다 아기자기한 사연이 숨어있는 곳 같다. 오슬로와 마찬가지로 독특한 환경 조형물들이 도시 곳곳에서 관광객들을 반기고 있는데, 마치 아름다운 스위스와 같은 풍경과 함께, 피시 마켓, 바, 커피 숍 등이 여행 중에 이국의 맛과 색을 느끼게 하는 개성 있고 다시 가고 싶은 도시이다. 공공 디자인 측면에서 오슬로와 베르겐은 거리에서 흔히 보는 사이니지도 하나의 문화이며 예술작품 같다. 세계문화 도시의 잘 디자인된 사이니지는 거리의 공예작품으로 도시 사용자는 물론 관광객들에게 다가오는데, 단순히 기호나 시각전달 매체로서의 디자인 결과물이 아니라 그 나라와 지역의 문화와 숨결이 느껴지는 문화예술품의 기능을 보여주고 있다. 노르웨이의 사이니지 역시 ‘건축과 도시환경’을 중시하여 도시경관과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디자인되어 있다. 매력적인 도시공간을 창출하기 위한 도시의 사이니지 디자인은 여러 사용자 간에 상호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중요한 미디어이다. 아울러 지역의 정보를 전달하고, 지역 문화를 반영한 조화로운 사이니지 디자인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노르웨이의 경우 거리의 사이니지 역시 대부분의 유럽 도시와 비슷하지만, 거리별로 특성화 되어있고 시각적으로 변화를 보여준다. 특히, 베르겐의 경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이미지에 맞는 고풍스럽고 품격 있는 관광 안내 정보사이니지는 독특한 시각적 질감을 연출하고 있다. 더불어 골목마다 스토리가 있고 정감 있는 그래피티(벽화, 낙서화)와 다양한 이미지의 환경 조형물은 관광도시의 매력을 더욱 멋지게 연출하고 있었다.
▲ 베르겐 시내 곳곳에서 본 작은 가게의 사인들이 오래된 역사의 베르겐 이미지를 잘 전달하고 있는 듯하며, 아날로그적이며 정감 있는 구성으로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디자인의 기본개념에 충실한 사이니지 사이니지를 구성하는 이미지, 타이포그래피, 컬러, 재질, 형태, 조명 등 주요 요소 중 유럽이나 선진국의 차별화된 점은 디자인의 기본 개념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유럽 사이니지는 ‘합의’와 ‘배려’의 측면을 고려하여 배치하고 있는 점도 우리의 현실과는 다른 점이다. 아울러 타이포그래피의 다양함과 컬러의 자연스러움을 다양하고 색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간결하고 현대적이며 세련된 서체를 기본으로 원색이 아닌 중간 톤의 색상과 잘 조화된 사이니지들은 조형적인 완성미와 함께 아름다운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또한, 사인이 건축물의 일부 요소로 보일 만큼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고 시각적으로 편안하고 실용적인 형태로 다가온다. 마치 건축물과의 조화를 먼저 생각하여 개인의 이익을 절제하고 도시 사용자를 먼저 배려하는 조화로움으로 연출되고 있는 듯하다. 거리 곳곳에서 우리 삶의 단편을 형상화한 다양한 환경 조형물들이 현대적으로 아름답게 구현된 거리에서 다양한 시각적인 느낌을 생각하게 하는 도시가 바로 베르겐이다. 그러한 입체적 경험의 중요한 영역인 도시디자인에서 사이니지의 중요성(경관, 조형미, 정보, 커뮤니케이션 등) 또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노르웨이 도시 곳곳의 아름답고 효율적이며 독특한 사이니지들이 도시의 환경을 아름답게 연출하고 있다. 여행에서 만나는 낯선 시각적 디자인 경험들은 늘 새로움을 준다. 그 새로움은 설렘과 흥분, 때로는 당혹감이 될 수도 있고 마지막에는 언제나 그 도시의 Look & Feel과 Tone & Manner에 대한 생각, 그리고 아쉬움을 남긴다. 지난 7월 초, 2주간 호주 4대 도시를 4년 만에 방문하고 돌아왔다. 코로나 팬데믹 3년여 기간 동안 세계의 유명 도시들이 문화·예술·디자인적으로 리모델링을 통하여 새롭게 변신하고 있는 정보는 여러 매체를 통하여 알고 있었지만, 지면으로 보았던 문화공간들의 혁신적인 변화는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계와 답답함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세계의 도시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고, 모든 분야에서 디지털화의 속도는 급속히 우리 생활 전반에 확산하고 있듯이 사이니지 분야 또한 예외는 아닌 것 같다.
▲ 베르겐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아름다운 목조건물과 해변 노천카페는 물론, 도심을 벗어나면 거리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슈퍼그래픽들과 환경조형물은 그 지역의 스토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단순하지만 정돈되고 질서 있는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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