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를 좋아하는 삿포로 여행자라면 놓칠 수 없는 여행지가 있으니, 바로 요이치 증류소다. 혹시 원치 않는 비손님과 함께 방문하게 되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변덕스러운 날씨는 이곳의 니카 위스키가 완성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홋카이도에 세워진 거대한 위스키 성, 요이치 증류소를 만나보자. (글·사진: 김혜령 객원기자)
▲ 요이치 증류소 전경. 중세 시대 유럽의 왕궁을 연상케 한다.
바닷가에 위치한 증류소 왕국 삿포로에서도 1시간 반. 그마저도 한 번에 가는 열차가 없어 환승해야만 갈 수 있는 곳, 요이치 증류소. 갑자기 비가 오다가 화창해졌다가 흐려지는 날씨 탓에 우산을 챙겨야 할지,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도 난감하다. 니카 위스키의 창립자 다케츠루 마사다카는 이곳에 자신의 술을 만들 수 있는 왕국을 건립했다. 다케츠루는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스코틀랜드 롱몬 증류소에서 2년간 생활한 후 일본으로 넘어와 증류소를 설립했다. 설립할 당시, 자신이 술을 만들며 배웠던 스코틀랜드 양식의 증류소를 설립했다. 요이치 증류소는 지금은 보기 드문 방식이지만, 전통 방식을 고수하기 위해 증류 시에 석탄을 사용한다. 석탄으로 불을 조절하는 모습을 시연해 주기 때문에 실제로 관찰할 수 있다. 니카 위스키는 산토리 위스키와 더불어 일본 위스키의 양대 산맥으로 유명하다. 사람들이 마시기 좋은 블렌디드 위스키를 주로 생산하는 산토리 위스키와 달리, 개성 강한 캐릭터로 유명하다. 특히 요이치 증류소에서 생산한 위스키는 그 자체로 개성이 넘쳐난다. 비슷한 이미지를 지닌 이유로 이탄을 태워 입히는 향과 짠기 머금은 바닷바람을 꼽기도 한다. 다케츠루는 위스키 증류소를 세우고 나서 처음부터 위스키를 생산하여 판매하지 않았다. 우선은 사과즙과 같이 사과를 활용한 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갓 증류되어 나온 알코올인 스피릿이 위스키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동안 지역 특산물, 사과를 활용한 제품군을 선보였다. 이때까지는 대일본과즙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출시했다. 이후 1940년, 위스키를 선보이며 기존의 회사명에서 일과(日果)라는 두 글자만 따서 니카(Nikka)라 이름지었다. 지금은 위스키가 주력이지만, 증류소에서는 아직도 사과로 만든 제품을 만날 수 있다. 운전으로 방문하여 술을 시음하지 못하거나 술을 못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사과주스를 나누어 준다. 또한 무료 시음장에 방문하면 위스키와 더불어 사과와인을 시음할 수 있으며 구매도 가능하다.
▲ 거대한 증류기 동상. 위스키 증류소 하면 증류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이렇게 거대한 동상으로 증류소의 매력을 끝까지 즐길 수 있는 요소를 배치해 두었다.
술고래들의 테마파크, 요이치 증류소 요이치 증류소 외관은 중세 유럽의 성의 모양을 띠고 있으며 내부 설계 역시 각각의 용도로 나누어져 있는 왕국의 구조와 닮아있다. 또한, 현재 증류소에서 술을 만드는 장소와 과거 사용했던 공간을 한데 엮어 스토리텔링을 훌륭하게 해냈다. 곳곳에서 바람을 타고 코끝을 간지럽히는 위스키 향 때문에 저절로 술 한잔을 찾게 된다. 인위적이지는 않지만, 치밀하게 숨겨놓은 브랜드의 가치관과 심볼은 니카 위스키 이미지를 쉽사리 잊지 못하게 한다. 일본인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증류소 곳곳을 견학하다 보면,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전반적인 과정을 알 수 있다. 모든 설명은 일본어로 이루어지지만, 앱을 통해서도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기에 일본어를 못한다면 이어폰을 챙기는 것이 좋다. 위스키를 만드는 공간은 크게 건조동, 분쇄 및 당화동, 발효동, 증류탑, 저장고 이렇게 5곳으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싹틔운 맥아를 원하는 굵기로 갈아서 효모가 먹고 자랄 수 있도록 당으로 전환하고, 여기에 효모를 넣어 발효하는데, 이 발효하는 과정까지는 맥주와 비슷하다. 맥아라는 동일한 원재료를 활용해 알코올이라는 효모의 분비물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 하지만 위스키는 이렇게 발효된 술을 걸러서 바로 마시지 않고, 증류라는 공정을 한 번 더 거친다. 증류하면서 발효된 술에 남아있던 수분은 증발하고, 그 안에 섞여 있던 알코올이 걸러져 내려오게 된다. 이때 만들어진 위스키의 원액을 스피릿이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숙성될 스피릿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신중하고 섬세하게 작업해야 한다. 양조장에서 가장 보고 싶은 풍경은 오크통이 차곡차곡 쌓인 저장고의 모습이 아닐까. 요이치 증류소에서는 위스키 1호 저장소를 관람 공간으로 열어두었다. 어두컴컴한 공간에 문이 닫히고 나면 빛이 들어오는 공간은 작은 창, 단 두 곳뿐이다. 그 눅눅하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술들은 자신이 위스키로 변모할 순간만을 기다린다.
▲ 니카 위스키의 심볼인 “King of blenders”. 니카 위스키 왕국에서 직접 술을 관리하며 어딘가에서 우리에게 술을 나눠주라고 명령하고 있을 것만 같다.
투어의 마무리에 술을 안 마실 수 없지. 증류소를 다 관람하고 난 뒤에는 무료 시음장으로 이동해 니카 위스키를 맛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유료 시음장, 음식점, 니카 위스키 박물관까지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어 방문객들이 끊임없이 브랜드의 유희를 즐길 수 있도록 조성했다. 니카 위스키의 상징, “King of blenders” 니카 위스키를 상징하는 캐릭터이자 심볼은 수염 난 스코틀랜드 남성이다. 왕관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어떻게 보면 마술에 사용하는 트럼프 카드의 K에 새겨진 왕을 쏙 빼닮기도 했다. 신중한 표정으로 위스키 잔과 보리를 들고 있는 그의 이름은 “King of blender”, 즉 “블렌더의 왕”이다. 잘 만든 심볼은 브랜드의 이미지를 쉽게 잊지 못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블렌더의 왕”은 브랜드를 뇌리에 각인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오사카에 ‘글리코’상이 있다면, 삿포로 시내 한복판, 스스키노에는 ‘니카상’이 있다. 본래 이름이 아닌 브랜드가 그의 본명처럼 불릴 정도로 브랜드를 직관적으로 상징한다. 증류소 구석구석에 배치된 배럴에도 그의 모습을 스텐실로 새겨두었다. 또한 자사 위스키 라인업 중 하나인 니카 블랙에도 등장한다. 이름조차도 왕인 그의 모습은 성을 닮은 요이치 증류소의 주인으로서 손색이 없다. 증류소의 모든 과정을 두루 살피는 그의 모습은 들고 있는 보리와 맥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왕이라는 심볼로 인해 니카 위스키 왕국의 이미지는 완성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