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것 같지만 늘 어려운 건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에서도 늘 강조하는 기본기. 기본기가 잘 되어 있는 팀은 화려하게 승리하며 임팩트를 남기는 경기는 적지만, 쉽게 패배하지 않는다. 화려함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 보다 기본기로 묵묵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페이퍼 앤 펜슬 커피’는 기본기에 충실한 카페였다. 화려함으로 손님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는 전쟁터인 핫 플레이스에서 묵묵히 기본기를 강조하던 가게.
커피를 주문하며 이름에 대해 물었더니 “그림을 그릴 때 연필과 종이는 기본이 되는 거잖아요,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카페 운영철학이 있었고 그것을 잘 표현해 주는 것 같아서 그렇게 정했어요”라고 설명했다. 화려한 색으로 계속 덧칠하며 그림을 그린다고 해도 연필과 종이로 그린 밑그림이 중심을 잡아줘야 멋진 작품이 탄생하듯 기본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페이퍼 앤 펜슬 커피는 새촌마을 안쪽 골목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한 형태로 일본식 주택이 아닌 개량 한옥 지구가 조성되었던 것에서 유래한 명칭이 새촌마을이다. ‘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의 시인 백석과 서양화가 전현웅이 살았던 곳이라 새촌마을 곳곳에는 시인과 화가의 작품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최근엔 흥미로운 가게가 많이 들어선 핫 플레이스인데, 성수동의 중심 보다는 한적한 분위기라 걷는 재미가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새촌마을에서도 안쪽 골목 구석에 자리한 페이퍼 앤 펜슬 커피. 직각으로 꺾이는 구조의 건물 반지하층에 있는데 공간의 구성이 인상적이라 시선을 사로잡는다.
측면에 각각 다른 크기의 유리창이 있고 그 사이에 입간판과 오픈을 알리는 작은 벽면간판이 있는데 한적한 골목에서 시선을 잡아 끌기에 차고 넘치는 사인과 익스테리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큰직한 유리창에서는 “Returning to the Basics”이라고 적힌 문구를 배치해 공간의 아이덴티티와 페이퍼 앤 펜슬이 커피라는 이름을 설명한다. 그리고 입간판과 오픈을 알리는 벽면간판에 목재를 사용해 페이퍼 앤 펜슬이란 이름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익스테리어와 간판뿐만 아니라 인테리어도 전체적으로 목재를 활용했고, 특히 프론트 앞쪽 구조를 연필의 육각처럼 표현해 공간의 아이텐티티를 인상적으로 드러냈다.
익스테리어의 유리창은 내부 자리에 앉으면 살짝 올려다봐야 하는 높이가 되는데, 골목의 지면 높이와 같아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이 마치 영상이나 스틸컷처럼 보여서 재미있다. 맑은 날도 좋지만 약간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꽤 운치가 있을 것이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반지하의 액자 같은 유리창을 통해 똑똑 떨어지는 빗물이 골목을 촉촉하게 적시는 장면을 보며 커피를 마시면 잠시나마 모든 걸 내려두고 쉴 수 있을 것 같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급하게 우산을 펴는 사람, 후다닥 뛰는 사람 등등 흥미로운 여러 풍경을 들여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페이퍼 앤 펜슬을 찾았던 날은 비가 오진 않았지만 적당이 흐려서 좋았다. 커피는 당연히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기본으로 돌아가려면 역시 아메리카노가 제격이니까. 아메리카노야 말로 카페의 기본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바로미터 같은 음료이니 말이다. 아메리카노라는 기본기가 잘 잡혀 있어야 라떼도 맛있게 만들 수 있으니. 다음엔 비 오는 날 가볼 예정이다. 심신이 지쳐서 일이 잘 손에 잡히지 않는 날 찐득한 라떼 한잔과 달달한 디저트를 먹으며 골목이 젖어 드는 풍경을 보면 왠지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아서. 왠지 비가 오는 날은 자연스레 페이퍼 앤 펜슬 커피가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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