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본지 캠페인의 주제로 ‘정상적인 거래관행을 만듭시다’로 정했다. 상식적이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캠페인 주제를 이렇게 선정한 것은 워낙 비정상적인 거래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 마케팅 역량, 영업방식 등에서 발생하는 문제보다 오히려 상거래 관행의 문제로 인해 기업간 신뢰가 무너지고 생존에 위협을 받는 일까지 생긴다.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는 디자인 기획 비용 문제를 짚어보자. 글_ 김유승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일이므로 비용 지급은 당연
● 디자인 기획비용 문제는 이미 본지에서 수 차례 언급한 적이 있는 주제다. 하지만 수 년 전부터 이 문제를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업계 종사자 스스로가 만연해 있는 거래관행을 핑계로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기만 하다. 사인 제작자들에게 디자인은 일종의 서비스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스스로 격을 떨어뜨리는 행위다. 오래 전부터 사인 제작업체들은 점포주의 주문을 받았을 때 재료비, 제작비, 시공비 등을 명시해서 견적을 내왔다. 견적서 항목에 디자인이나 기획비가 있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소비자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토가 만연해 있기 때문에 쉽게 바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일부 사인 제작자들은 “정식 항목으로 넣을 경우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재료비나 시공비에 적당히 녹여 넣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런 식으로 일을 할 수는 없다. 디자인과 아이디어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사인 업종은 단순한 제조업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광주광역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출력업체 대표는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업체들이 디자인을 서비스로 치부하고 있었지만 창업 당시부터 디자인비용을 별도로 청구해 왔다. 물론 그만큼 디자인에 더 많은 정성과 시간을 투자해야만 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한다. 생활간판을 위주로 하는 사인 제작업체 뿐만 아니라 옥외매체 관련 업무 종사자들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한 외국계 광고회사의 옥외매체 담당자는 “백 가지 아이디어와 기획안 중에서 실제로 현실화하는 것은 아마 1% 미만일 것이다. 매체 대행비를 광고주에게 청구하지만 이를 시행하기 위해 공들였던 수많은 아이디어와 기획에 대해서는 아무도 보상해 주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정답은 없지만 유형별 비용 책정방식 만들어야
● 매체 대행에 대한 경쟁입찰 사례들을 보면 낙찰업체에게도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에 대한 비용을 인정해 참가비를 주는 경우가 있다. 입찰에 참여하려면 각종 서류들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물론 제안서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분석을 하고 자료조사를 해야 하며 아이디어를 끄집어내기 위해 밤낮으로 머리를 싸매야 한다. 기회비용만 생각하더라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디자인 비용을 청구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대다수 사인 제작자들은 도대체 얼마를 청구하는 것이 적정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반문하기도 한다. 오래 전부터 디자인 비용을 청구해 온 서울 영등포구의 한 사인 제작자는 “전면, 돌출, 지주 등 종류와 형태 등에 따라 디자인비용은 달라져야 한다. 상세한 설계도면까지 요구하는 경우에 디자인비용은 1.5배 이상으로 높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디자인 비용을 인정하고 지급하는 것은 어쩌면 업계 전체의 위상을 업그레이드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한 광고회사 옥외매체 담당자의 말이다. “해외 유명 광고제 옥외광고 부문 수상작들을 살펴보면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감탄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비용을 정당하게 인정하는 문화가 정착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를 발휘하고 싶어도 각종 규제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핑계다. 정당한 비용을 받을 수 있다면 규제 따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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